이제 휴가다
지난 3주 열심히 작업했다. 들어온 일들이 재미있어서 할 맛이 나기도 했다. 작업 요청 메일은 대체로 엘에이 오후에서 밤 사이에 온다. 바로 해야 하는 게 아니면, 메일을 읽고 잔다. 다음날 4-5시쯤 일어난다. 리니가 깨는 7-8시 전까지 두세 시간 일한다. 빵에 버터도 발라 먹고 차도 마신다. 배고파서 일어난건지 조금 헷갈릴 정도로 새벽에 우적우적 잘도 먹는다. 노동요도 튼다. 집중해서 작업을 한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즐겁게 한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아침형 인간이다.
*노동요로는 요즘 이 앨범에 꽂힘.

새벽에 일 > 오전~초 저녁까지는 육아 > 밤 9시쯤 리니와 취침. 회오리치듯 정신없이 빙빙 돌던 하루가 안정을 찾았다. 아침에 할 일들을 모두 쳐내니 육아에 집중할 수 있다. 저녁에는 미련없이 잠들어버린다. 알람 없이도 새벽에 눈이 떠진다. 뭔가에 쫓기는 감이 없진 않지만 하루 일과라는 것이 생겼다.
그런데 그 동안은 왜 이렇게 살지 못했을까? 내 욕심 때문이다. 쓸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인데 일도 받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큐레이션도 하고 싶고.. 건강 몇 번 무너져보고 알았다. 나 체력 안 좋네? 책상에서 몇 번 잠들고 다짐했다. 이렇게 살지는 말자.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한다. 하루 3시간 일하는 하루 일과가 버텨낼 수 있는 일만 받는다. 데드라인이 너무 타이트하거나 하루에 그 이상 일해야 하는 경우 과감하게 노 한다. 지난주에는 지금 하는 일들과 병행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못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메시지 말고 메일로 이런 내용을 보낸 건 처음이다. 또 다른 곳은 광고 컨셉 카피까지 작업했는데, 휴가와 겹쳐서 실제 광고 작업은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욕심을 버리니 과감해졌다. 동시에 나는 좀 더 사뿐해졌다. 여기까지 오는데 퇴사하고 3년, 리니 낳고 2년 걸렸다.
그런 광고카피가 있었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오늘은 캐나다에서 동주언니가 온다..! 신난다. 일주일간의 휴가. 서로 보고싶어서 오랫동안 기대했던 휴가다. 아 맞다 그런데 주저리주저리 쓰다보니 작업한거 정리를 못했다.
1. 헤어케어 브랜드 북 국/영문 작업. 제안드린 플로우를 브랜드 쪽에서 보시고 덱을 주셨다. 안에 들어간 국문 내용을 워싱해서 보내드렸다. 컨펌되어서 영문 작업 하고 마무리했다.
2. TV 브랜드 광고 태그라인, 나레이션 작업. 삼성과 하던 일과 거의 같은 일이다. 나레이션과 캡션 작업. 태그라인 3개 옵션. 서브 태그라인 각 3개 옵션씩 총 3편 제안. 태그라인 옵션 제안하는게 나레이션보다 어려운 일인데.. 길이로 치면 짧아서.. 아실까?
3. 제조사 파트너 프로그램 Flyer, 웹사이트 카피 작업. 기존 영문 카피를 로컬라이징 작업. 예전에 VIP 프로그램 앱 카피 작업을 했었다. 브랜드 북 같이 하는 실장님이 소개해주셨다고 했다. “누구 소개로 연락드립니다” 라며 연락을 주시면, 나는 나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하고 계실까 긴장하게 된다.
4. 제조사 브랜드 북 수정 작업, 신규 레터 작업. 이런 레터를 받아보는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존중하는 건 좋지만, 과한 오버프로미스는 오히려 독이라고 했다.
5. 의료기기 브랜드 광고 컨셉 보드 작업. 두 가지 컨셉을 셀링하기 좋게 다듬고 피티 내 콘티용 카피를 올렸다.
6. 섬유 브랜드 패키지 작업. 미국 코스트코 향 섬유 제품 패키지 카피 워싱을 했다.
7. 제조사 카드뉴스 작업. 진행중인 <히든 히어로즈> 시리즈물.
일과는 별개로 은우 언니의 스타트업 제안서를 같이 봤다. 언니 너무 뛰어난 사람이고 제안서도 좋은데 왜 기술 하나도 모르는 나한테? 언니는 마케터들이 제안서를 보는 방식이 다를 것 같다고 했다. 제안서를 리뷰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뭘지 생각할 것 같다고.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작업 받을 때 꼭 수정 몇 회까지인지를 미리 공유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걸 미리 못해서 나중에 이야기 드리려니 죄송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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