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존 무스(John J. Muth)의 영어 그림책
매일같이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다 보면 좀 뻔하다 느껴질 때가 있다. 글이 유아틱하다거나 내용이 단순하다는 게 아니다. ‘토픽’ 자체가 아이들의 세상 속 경험에만 의존하는 것 같달까. 그림책 수업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대체로 브레인스토밍할 때 어릴 적의 기억이나 감각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출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일본 하이쿠 형식으로 쓰인 그림책 Hi,Koo 를 추천받으며 저자인 존 무스(John J. Muth)를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무스의 다른 책들도 접하며 굉장히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들이 선불교(Zen Buddhism)과 같은 동양 철학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스의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그가 늘 마음에 새긴다는 명언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작가 E. B. 화이트가 “Don’t write down, write up” 이라고 했던 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쉽게만’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무스는 저 이야기와 어울리는 작가다.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에 더 깊은 내용들을 담는 사람.
내게 그림책도 철학을 말할 수 있다 알려준 무스의 책들. 그의 그림책을 읽고 나는 내가 아이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은 아닐지, 그림책의 가능성을 너무 좁게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지 반추하게 되었다. 오늘은 이런 무스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어떻게 그의 그림책들은 아이들마저 철학적인 내용을 좋아할 수 있도록 담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해보려 한다.
일본에서 서예를 공부한 미국인 존 무스(John J. Muth)
미국 오하이오 태생의 무스는 동서양을 오가며 다양한 예술적인 경험을 쌓았다. 그는 일본에서 서예를 공부하기도 하고, 유럽에서 그림을 훈련하기도 했다고. 그는 특히 그림책 일러스트를 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물처럼 번지는 수채화와 정적인 화면 구성, 조용한 공기감 같은 것들.
사실 무스는 그림책 작가이기 이전에 그래픽 노블리스트이자 만화가로서도 큰 주목을 받았던 아티스트다. 작품 중 Mystery Play는 아이스너 상(Will Eisner Comic Industry Award, 2000)을 수상하기도 했으니 무스는 서사와 이미지를 결합해 스토리텔링을 하는 데 있어 다양한 경험을 해 온 작가다.
그런 무스는 아버지가 되고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부모로서 마주하게 된 질문들과 아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느낀 삶의 의미, 관계 같은 것들을 직접 그림책에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톨스토이의 동명 단편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첫 책, The Three Questions를 시작으로 무스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철학을 담은 책을 선보이게 된다.

무스는 어떻게 철학을 그림책 속에 담아낼까
그림책이 철학을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주요 독자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무스의 책은 철학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꼼꼼하게 설계된 구조와 장치로 아이들이 좀 더 깊은 사유와 관련된 질문들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칼데콧 상을 받은 무스의 대표작 Zen Shorts를 통해 그만의 방식을 살펴보자.
1)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있는 액자식 구성
Zen Shorts는 아이들의 옆집에 현명하고 사려깊은 판다 스틸워터(Stillwater)가 이사 오며 시작된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스틸워터에게 다가가고, 스틸워터는 그에 대한 답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선불교(Zen)우화를 들려준다. 이처럼 짧은(short) Zen 이야기들이 책 속에 들어 있어서 책 제목이 Zen Short.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열리는 일종의 story in story, 즉 액자식 구성이다. 스틸워터는 아이들을 훈계하지 않는다. 마치 사탕 하나하나 까듯, 이야기를 하나씩 까 줄 뿐이다. “이렇게 해봐”라고 말하기보다는, “이런 이야기가 있대”라며 돌려서 제안한다. 아이들은 스틸워터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신의 상황을 돌아본다. 스틸워터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교훈을 생각해 보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지 돌이켜본다.
2) 마치 친구처럼 편안한 동물 캐릭터
그림책에 인간이 아닌 동물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동물들과는 어느 정도의 감정적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이라고 수업에서 배웠다. 아이들은 아무래도 어른들보다 마음도 여리고, 이야기와 현실을 똑 떼어내 구분해버리기 어렵기에, 그림책 속 주인공들이 아파하거나 힘들어할 때 자기도 힘들어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 아무래도 인간과 다르다는 이유로 감정적인 거리감을 유지하기가 쉽다는 거다.
나는 철학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철학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다. 존재론적인 질문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너무 크고, 선의 개념 또한 모호하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커다랗고 털이 복슬한 판다, 스틸워터가 한다면? 아무래도 이야기가 좀 더 편안해진다.
말수가 적고, 조용하고, 판단하지 않는 스틸워터는 멘토이면서도 친구 같고 스승이면서도 이웃 같은 존재다. 아이라면 우리 옆집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느낄 법한 판더랄까. 참고로 무스는 그의 첫 그림책 The Three Stories에서도 톨스토이 원작 속 인물들을 학, 원숭이, 개와 같은 동물로 의인화해 등장시키며 철학적 질문의 무게를 낮추기도 했었다.

무스의 그림책 추천작
Stillwater and Friends 시리즈
무스의 책 중 널리 알려진 건 칼데콧 수상작 Zen Shorts . 이 책을 시작으로 스틸워터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Zen 시리즈로 계속 이어진다. Zen Shorts에 이어 Zen Ties, 그리고 Zen Ghosts까지. 이 세 권을 통해 스틸워터와 아이들의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철학이 어렵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The Three Questions
어른인 내게도 고요한 파장을 남긴 준 무스의 그림책 작가 데뷔작.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제목 속 ‘three questions(세 가지 질문)’은 꽤나 존재론적이다. 이 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니콜라이의 여정을 보여주는 책. 그의 모험을 통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고,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통찰을 얻는다.

그림책은 주요 대상층이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종종 신나고 즐거워야 한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좀 더 정적이고 깊은 사유의 내용들을 담을 수도 있다. 어쩜 어른인 내 마음을 더 깊이 건드려버린 무스의 책들. 분명 아이들에게도 생각의 무게를 실어주는 깊은 울림의 책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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